서른즈음에 떠난 최고의 가객… 김광석 사망 [오늘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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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6일 대한민국의 가객 김광석이 3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정성 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라는 뜻의 가객이라 불린 김광석은 10여년간 음악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 가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한국 가객의 탄생
1964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5세가 되던 해 서울로 이사왔다. 중학교 시절부터 악보 보는 법을 익혔던 김광석은 교사로부터 음대에 진학할 것을 권유받았다. 하지만 집안 형편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관심 분야와 거리가 먼 대학에 입학했다.
방황하던 그는 '라디오에서 나오던 사랑 노래들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들'에 관심을 갖게 되고 대학 연합 노래 동아리인 메아리에 가입해 첫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녹두꽃'과 '이 산하에' 등을 부르며 민중 가수로 활동했다.
군 제대 후 김광석은 친구들과 함께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만들었는데 이 테이프를 들은 산울림의 리더 김창완은 정식 음원을 내자고 권유했고 이들은 '동물원'이라는 음원을 공식적으로 발매했다.
김광석은 동물원 멤버들과 2집까지 함께했지만 음악에 대한 견해 차이로 동물원에서 나와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기다려줘' '너에게'가 담긴 솔로 1집, '사랑했지만'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날들'이 담긴 솔로 2집을 내놓으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나의 노래'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이 담긴 3집을 발매하면서부터 김광석은 민중가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이후 '일어나' '서른즈음에'가 포함된 명반 4집을 마지막으로 발매하면서 한국 소시민을 대표하는 가수로 자리매김 했다.
김광석은 본인 오리지널 앨범들을 제외하고도 리메이크곡들을 담은 '다시부르기1' '다시부르기2'를 발매하기도 했다. 해당 앨범들에는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공감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등병의 편지' 등의 노래들이 포함돼 있다.
매해 음반 발표와 소극장 라이브 공연을 병행한 김광석은 생전에 많은 공연을 해 '또 공연을 하느냐'는 의미로 '또 해'라는 별명이 있었다. 마침내 1995년에는 1000회 기념 공연을 열기도 했다.
김광석의 노래는 특정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입대 전 두려운 마음을 위로하는 '이등병의 편지' 사랑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함께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인생에 대한 고민을 노래하는 '서른즈음에' 황혼기에 접어든 노부부의 인생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등은 김광석이 특정 세대만이 아닌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가수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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